[탐방]회기 + '시장' = ? (2부)

By. 오동건 에디터

- 사물을 모으거나,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고 나름의 체계를 만들어 자신과 주변의 삶을 정리하는 일에 흥미를 느낀다. 그 흥미의 초점을 회기, 홍릉에 맞춘다.



(1부에서 바로 이어짐)



  다시 카카오맵에서 회기시장을 찾아보았는데, 나는 분명히 회기시장 옆 건물 앞에 서 있다. 그렇다면 시장처럼 생긴 공간이 있지 않을까?

  몇 걸음을 더 걸어가자 갈림길이 나온다. 학교 담벼락을 따라 뻗어 있는 오른쪽 길은 시장 분위기가 나지 않지만, ‘진입 금지’라는 노면표지가 적혀 있고, L. C. O. C. 카페와 GS 편의점 사이로 난 왼쪽 길은 시장 골목처럼 생겼다. 골목 안에 옹기종기 모인 저 건물들이 가게일까? 일단 좁고 낯선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골목에는 김밥집, 기름집, 반찬 가게, 카페, 파스타 가게, 고깃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계속 앞으로 걸어가며 천천히 둘러보니 치킨집, 실내장식 가게, 마라탕과 꿔봐 줄 전문점, 미용실, 고깃집, 오리 족발집, 떡집, 떡볶이집, 쌀가게도 있다.

  레알 마드리드 축구팀 마크를 간판에 그려둔 라면 가게도 나의 눈길을 끌었다. 마라탕과 꿔바로우 전문점과 주거용 건물 사이로 난 골목으로 들어가 보니 회기동 주민센터가 숨어 있었다.



  센터 입구에는 “조그마한 친절이, 한 마디의 사랑의 말이, 저 위의 하늘나라처럼 이 땅을 즐거운 곳으로 만든다 - J.F. 카네기”라는 글을 적은 팻말이 걸려 있었다. 요즘 회기를 대상으로 만든 내 콘텐츠들도 이 땅을 즐거운 곳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건물 왼쪽의 게시대에는 2023년 회기동 주민자치사업을 결정하는 제4회 회기동 주민총회 주민투표, 2022년 8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답십리2동 주민자치회, 장안1동 주민자치회, 회기동 주민자치회와 함께 하는 종이팩 재활용 프로젝트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답십리2동과 장안1동은 어떤 동네들일까? 왜 회기동과 함께 사업을 하게 됐을까? 회기동에 관한 나의 호기심이 동대문구의 다른 동네들로도 향했다.



  건물 앞에 있는 회기동 안내도를 살펴보았다. 다시 봐도 주먹도끼처럼 생긴 회기동의 절반이 하늘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경희대학교 캠퍼스가 거의 절반에 가깝다는 사실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시장 골목으로 나오자 새마을금고, 포차, 미용실, 네일아트점, 베트남 식료품(?) 가게, 컴퓨터 수리점이 보였다. 이제야 시장 입구가 시야에 들어왔다.



  시장 입구는 손님들이 붐비고 직원도 많은 커다란 과일 가게와 구립 회기어린이집을 회기로와 이어진다. 어린이집의 이문로 쪽 부분 창문 밑에는 작은 화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노랗고 빨간 꽃들과 초록색 식물이 나무 한 그루와 함께 심겨 있다. 창문 밑 벽에는 ‘꽃을 함부로 만지지 마세요’, ‘화단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 ‘꽃을 밟으면 아파요’라고 문자도처럼 알록달록하게 꾸민 안내문이 붙어 있다.



  그 앞의 좁은 인도에 ‘회기시장 Hoegi Market’이라고 적힌 회색 안내판이 서 있다. 16시 51분, 나는 이곳이 그토록 찾던 ‘회기시장’임을 확실하게 확인했다.

  회기 시장이 언제 세워졌는지에 관한 확실한 정보는 찾지 못했다. 다만 2018년 10월 19일 자 머니투데이의 ‘마트에 무너진 골목, 청년이 세우다... 회기시장’이라는 기사에 따라 시장은 1970년대에 형성되었다는 내용을 확인했다.

  또한 온바오(www.onbao.com) 누리집에는 회기시장이 1970년에 개장하여 40여 년간 지역 상권의 중심 역할을 하였으나 낙후된 기반 시설로 대형 할인점 등 현대적 상업 시설에 경쟁력을 잃던 중 동대문구, 서울시, 중앙 정부의 골목상권 활성화 정책에 힘입어 좋은 상품과 서비스로 다른 상권과의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내용이 나와있다.




  좁은 골목에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회기시장. 어디선가 본 듯한,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지나간 시간 속 기억을 떠올려보니, ‘건설시장’이 있는 골목과 비슷한 듯하다.

  건설시장은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의 망미번영로60번길에 있다. ‘부산역사문화대전’에 따르면, 조선 시대 좌수영장의 역사적 전통을 바탕으로 하는 지역의 작은 종합 시장으로 1979년 3월 15일에 개장하였다. 회기시장처럼 1970년대생으로, 축산물, 수산물, 청과, 잡화를 취급하며 1980년대에 번영했지만, 주거 환경과 대중교통 노선의 변화, 그리고 대형 할인점들의 등장으로 상권이 위축되었다.

  수영동은 내가 1993년 4월부터 2001년 9월까지 살았던 곳이고, 회기동처럼 여러 차례 행정편제가 바뀌었다. 내가 처음 전입했던 때, 수영동은 부산직할시 남구에 속하였다. 그런데 1994년 12월에 지방자치법이 개정되고 본격적인 지방 자치 시대를 맞이하며  ‘직할시’가 ‘광역시’라는 새 이름으로 바뀌었다. 지방자치단체의 이름으로 부적절하다는 지적 때문이다. 그래서 ‘부산직할시 남구 수영동’은 ‘부산광역시 남구 수영동’이 되었다.

  다음 해 3월에 수영동을 비롯한 남구의 일부 지역이 분리되어 새로운 ‘수영구’가 신설되며 나는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주민이 되었다.

  나의 어린 시절 기억 속 건설시장은 주택가 좁은 길에 상가 건물이 하나 있고, 길 양쪽으로 가게들이 조금씩 모여 있는 조용한 시장이다. 건설시장에서 장을 자주 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길가에 있던 가게들은 언제부터인가 하나둘씩 사라졌고, 이제는 어린 시절에 보았던 풍경을 찾을 수 없다.

  시장 가까이에, 2022년 11월 현재 도로명주소에서 ‘연수로357번길 26’으로 표시되는 4층 건물에는 유치원에 입학하기 전까지 다녔던 ‘무지개미술학원’이 있었다. 무지개미술학원으로부터 걸어서 1분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수영동에 살 때 늘 갔던 목욕탕인 ‘향록탕’이 있었다. 현재 향록탕 자리에는 ‘망미번영로60번길 31’이라는 주소를 지닌 ‘에코하임아파트’가 있다.

  이렇게 나는 회기동을 둘러보다가 수영동과 ‘닮은 꼴’을 찾아내고, 나아가 나의 옛 동네에 관한 오래된 기억을 조금이나마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다시 시장 골목으로 들어가, 왔던 길로 되돌아가 본다. 이번에는 배가 고파 식당을 찾아 나섰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회기시장에서 먹은 음식은 뭐가 될까? 배고픔과 기대 속에서 카카오맵을 살펴보았는데, ‘레알라면’이라는 라면집이 이곳의 맛집 중 하나인 듯하다.

  아, 조금 전에 레알 마드리드 로고가 그려진 간판이 나의 눈길을 끌었던 그 식당이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손님들이 남긴 방명록 포스트잇으로 벽이 도배가 되어 있다. 왼쪽 벽에는 12시, 3시, 6시, 9시 방향에 라면이 담긴 냄비 캐릭터가 그려진 흰색 시계가 걸려 있다. 차림표를 보니 라면은 맵기에 따라 레드, 오렌지, 옐로우로 구분되어 있고, 계란은 기본 2개가 들어간다. 공깃밥을 포함한 셀프바는 무료인데, 콩나물, 단무지, 유부, 김치, 파, 치즈가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옐로우와 계란 추가를 주문하였다. 남자 사장님과 여자 사장님이 함께 일하고 계셨는데, 두 분 모두 친절하시고 고객을 반갑게 대하셔서 편안한 기분을 느꼈다.


 


  주문한 ‘옐로우 라면’이 나왔다. 콩나물, 유부, 김치, 파, 치즈를 라면에 넣었다. 회기동에서, 회기시장에서 나의 첫 식사. 내가 에디터스 2기에 합류하지 않았다면 이곳을 알지도 못했을 것이고, 이 라면을 먹어보기도 어려웠겠지. ‘옐로우 라면’은 지금까지 식당에서 먹어본 라면들 중 가장 꿀맛이었고, ‘레알라면’은 출입문에 적혀 있는 말 그대로 ‘생각보다 맛있는 집’이었다.



  맛있는 식사를 마친 다음, 방명록을 적은 포스트잇을 벽시계 6시 방향에 붙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늘 회기에 와서 회기시장 구경도 하고 라면도 맛있게 먹고 갑니다. 레알라면 사장님 늘 번창하시기를 빕니다. 다음에 또 라면 먹으러 올게요! 2022년 10월 11일 화요일. 홍릉 일대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로컬 웹진 ‘홍릉, 살다’ 에디터 오동건”

  맛있게 먹었다는 인사를 사장님들께 전하던 도중, 내가 ‘홍릉, 살다’ 에디터로 활동하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회기시장에 왔다는 사실도 알렸다. 웹진에 라면집 이야기를 적어도 괜찮겠는지 사장님들께 말씀드려보니, 두 분 모두 좋아하면서 마음껏 사진 찍어도 괜찮다고 하셨다. 웹진에 콘텐츠가 실리게 되면 꼭 알려드리겠다는 말씀을 남기고 다시 한번 서로 인사를 나눈 다음 가게를 나왔다.



  17시 39분. 아직 여유 시간이 남아 있다. 회기시장에 왔으니 회기동 벽화골목*도 잠시 둘러보고 싶어 그곳을 찾아 나섰다.

  (관련 콘텐츠 - 골목 탐방: 회기의 현재를 걷다/김현진 에디터) 



  경희대로4길과 회기로23길이 만나는 교차로, 그리고 회기로23가길에 있는 건물들의 담장에는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소한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빨간 장미꽃들 사이로 노랗고 파란 나비들이, 커다란 해바라기 사이로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담은 벽화가 마냥 따뜻하게 느껴졌다.



  17시 53분. 나는 회기로, 회기로23가길과 회기로21가길이 만나는 작은 교차로에 서 있다. 몇몇 사람들이 중국어로 대화하며 함께 걸어간다. 회기동은 노을과 함께 조금씩 어두워지고, 가게들의 간판들은 하나둘씩 불을 켜기 시작한다. 이제 회기동과 다시 만나기 위하여 다시 잠깐 헤어질 시간. 나는 회기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17시 56분. 회기로23나길을 나와 왼쪽으로 들어서자 뻥튀기집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뻥튀기를 먹고 싶은데, 들고 온 가방이 작았다. 다음에 장바구니 들고 와서 꼭 사야지.

  17시 57분. 회기시장의 회색 안내판과 다시 만났다. 시장 골목을 바라보니 가게 간판들에 불이 켜져 있다. 과일 가게도 여전히 손님으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오늘 나와 회기시장의 첫 만남은 여기까지. 첫 만남에 관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안고, 다음 일정을 향하여 시장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17시 59분. 회기역 앞 교차로. 회기동과 휘경동이 마주 보는 이곳은 이제 각양각색의 간판 불빛과 자동차 전조등 불빛으로 화려함을 드러낸다. 건널목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무심히 주변을 둘러보던 그때, 뭔가가 갑작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휘경동 Hwigyŏng-dong


  ‘휘경동’이 종전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라 로마자로 표기된 표지판이었다.

  종전 표기법은 1984년 1월부터 2000년 6월까지 쓰였다. 그러니 이 표지판은 제작자의 실수가 아니라면 2000년 이전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1984년식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은 한국학을 연구한 미국인 학자들인 조지 매커피 매큔과 에드윈 라이샤워가 국어학자들인 최현배, 김선기, 정인섭의 도움을 받아 고안한 ‘매큔 라이샤워 표기법’을 일부 수정한 것이다. 한국어를 음성학적으로 정밀하게 로마자로 옮기는 이 체계는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다.

  그리고 당일 나의 다음 목적지였던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가 1939년에 발간한 학회지에 “The Romanization of the Korean language, based upon its phonetic structure”라는 논문으로 소개된 바 있다. 우리 학회로 가는 길에 우리 학회의 흔적을 이곳에서 우연히 만나다니. 보통이 아닌 인연처럼 느껴졌다.



  18시. 회기동과 휘경동을 가로지르는 건널목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어오자, 나는 회기와 다시 만나기 위하여 잠시 회기의 경계를 벗어났다.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만남과 소통을 실현하고 자신의 세상을 넓히겠다는 지향점이 이렇게 회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날 잠깐 둘러본 회기시장은 복잡한 도시 속에서 잠시 여유를 찾고, 회기동의 생활 문화를 단편적으로나마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시장이 정확히 언제 세워져 어떤 역사를 거쳤는지, 상인들과 손님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앞으로 회기시장의 역사를 살펴보고 그곳의 사람들과 소통하여 회기동의 생활 문화사를 기록한 아카이브를 만들어보고 싶다.


editor. 오동건



#회기시장  #에디터스  #일상속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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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홍릉의 첫 만남은 '타임 어택(time attack)' (링크)

'회기' + 시장 = ? (1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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