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일상이 여행으로 바뀌는 곳, 와인으로 사람을 잇다: 도눔 솔리스

By. 한나라 에디터

- 좋은 와인을 좋은 가격으로 제공하는, 좋은 와인과 함께 즐거운 분위기를 누리는, 좋은 와인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연결고리라고 믿는 회기동의 와인바에 가다.



  경희대학교 인근. 회기동. 홍릉. 여러 명칭으로 불리는 이 동네는 너무 익숙한 장소였다. '학교를 다니며 무심히 지나치던 일상의 풍경, 캠퍼스의 추억 외에 특별함을 찾기 힘든 무난한 동네.' 누군가 내게 홍릉을 묘사하라면 이런 대답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그 공간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회기역에서 도보로 10분, 번잡한 스타벅스 사거리를 지나 한적한 주택가에 들어서면 머지않아 We are OPEN!이라고 쓰인 간판이 눈에 보인다.

  한국어와 영어가 함께 쓰인 가판에서 시선을 돌리면 양옆에 와인병이 들어선 높은 계단이 있다.

  낯선 계단을 한두 발자국씩 올라가면 넓게 탁 트인 아늑한 공간이 나타난다. 시선을 돌리면 영어, 프랑스어, 한국어가 섞여 들리고 얼핏 알아듣기 어려운 언어도 들려온다.

  즐거운 듯 대화를 이어나가는 손님들의 들뜬 표정이 보며 잠시 해외 땅을 밟은 듯 기분이 낯설어진다.

  무감한 회색빛 일상 풍경이 반짝하며 다채롭게 바뀌는 순간, 홍릉 속 다채로운 문화를 사람들을 경험하는 공간, 

  여기는 홍릉의 와인바 도눔솔리스donumsolis다.

 

  도눔솔리스는 한국계 프랑스인 남편과 고려인이자 키르기스스탄 출신 아내가 함께 운영하는 와인바다.

  영어, 프랑스어, 한국어와 러시아어가 자유롭게 오가는 자유로운 공간에서 이들 부부를 만나 와인과 사람을 연결하는 도눔솔리스의 철학을 엿봤다.


*인터뷰는 영어, 한국어로 진행했으며, 한나라 에디터가 번역하여 작성함.

 

피에르 프레노 Pierre Fraineau, 정안나 Anna Jeong 대표

 

반갑습니다. 두 분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피에르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프랑스 가족에게 입양을 가 대부분의 삶을 프랑스, 보르도 지방 근처에서 살았습니다.

자라면서 자연스레 와인, 프랑스 음식 등에 영향을 받았어요. 12~13년 전쯤 일 때문에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거든요. 팬데믹 때문에 잠시 여행사 일을 중단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저희 부부가 도눔솔리스 와인바를 열었습니다. 도눔솔리스는 2021년부터 영업을 시작했고요.

안나   저는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정안나라고 합니다. 2010년 쯤 한국에 와서 한국외대에서 공부를 했고요. 졸업 후에는 9년 동안 경희의료원에서 국제진료팀 직원으로 일했어요. (오랫동안 살았다 보니) 이 동네를 무척 좋아하고 사랑해요 (웃음).

 

도눔솔리스가 라틴어로 ‘태양의 선물’이라는 뜻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이름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피에르   사실 이 이름을 고르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전 프랑스어를 쓰고, 안나는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또 두 사람 모두 영어를 쓰지만, 한국에 살고 있잖아요?

이런 여러 문화적 배경을 포괄하면서 사람들에게 쉽게 기억되는 단어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프랑스어 이름도 좋지만 한국 사람이나 러시아 사람들이 발음하기는 어렵고요. 한국 이름은 또 러시아 사람이나 프랑스 사람이 기억하기 힘들죠.

그래서 관점을 바꾼 게, 포도가 와인에 없어선 안되는 요소거든요. 그런데 해가 없이는 포도가 자랄 수가 없습니다. 그게 저희가 도눔솔리스라는 이름을 선택한 이유죠.

 

포도가 태양의 선물 그 자체라는 뜻이 되니, 바로 이해가 가네요.

안나   (라틴어이기 때문에) 한국인, 프랑스인, 러시아인 누구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단어죠. 오히려 누구도 쓰지 않으니까요.

피에르   그리고 어려운 발음도 없어서 누구나 발음할 수 있고요.

 

가게의 콘셉트가 있다면 한 문장으로 설명해 주시겠어요?

피에르   저희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와인을 좋은 가격에 제공하는 것입니다. 한국에도 좋은 와인이 많지만 보통은 가격이 비싸죠. 아니면 반대로 저렴하고 퀄리티가 그리 좋지 않은 와인도 있고요.

저희는 중간지점을 지향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좋은 와인과 함께 즐거운 분위기를 누리길 바라고요.

 

어떻게 홍릉, 회기동에 와인바를 여시게 되셨나요?

안나   제가 아끼는 동네이고 아는 사람도 많다 보니 이 동네에서 와인바를 열게 됐어요. 제 대학교수님들, 병원 전 직장 동료들이 많으니, 저희가 근처에 바를 열면 많은 분들이 방문할 수 있고 와인도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처음부터 홍릉을 후보지로 염두에 두신 건가요?

피에르   아니요. 안나의 추천 덕분이죠. 전 사실 도눔솔리스의 후보지로 다른 곳들을 생각했어요. 이태원이나 근처 지역들 말이죠.

동대문처럼 저희가 잘 아는 다른 동네도 후보지에 두긴 했지만, 팬데믹 기간 동안 가격들이 모두 올랐더라고요. 권리금도 굉장히 비쌌고요.

강남이나 이태원 같은 지역은 이미 형성된 상권 덕분에 일정 고객 수를 보장할 수 있지만 작은 공간에 경쟁이 무척 심하고, 다른 선택지(홍릉)는 비용이 적게 들고 경쟁이 덜하고 더 넓은 공간을 쓸 수 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저희가 모든 것을 만들어 나가야 했어요.

사실 이전에 여행사를 운영할 때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는데, 그때도 하고 싶은 일들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넓은 공간을 선택했어요. 도눔솔리스의 후보지를 정할 때도 같은 방식으로 결정을 했습니다.

비록 처음은 힘들더라도 코로나19는 영원하지 않을 것이고, 그 시기를 견디는 저희가 이 상권의 선구자가 되는 거잖아요?(웃음)

 


가게에서 취급하는 와인의 종류가 얼마나 되나요?

안나, 피에르   30~35 종류쯤 됩니다. 저희는 크게 네 그룹의 와인이 있어요.

클래식한, 가격대가 조금 있는 보르도 와인이 있고요. 흔히 딜리케이트(delicate)와인이라고 부르는, 가볍고 부드러운 종류의 와인이 있어요. 세 번째로는 너무 높은 비용은 부담스럽지만, 좋은 와인을 즐기고 싶은 젊은 사람들을 위한 와인들을 구비하고 있습니다.

예외적으로는 직접 특정 와인을 주문하는 분들에 한해서 원하시는 와인을 구해서 제공해 드리고 있습니다.


와인을 추천하실 때는 주로 어떤 기준으로 와인을 고르시나요?

피에르   구체적인 와인의 종류를 딱 꼬집어서 추천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카베르네 소비뇽, 샤르도네 이런 식으로 특정 종류를 정해서 주문하시는 분들도 분명 있죠.

하지만, 저희에게 와인은 가족 같은 개념이에요. 뿌리가 같은 형제자매가 서로 닮았지만, 또 다른 것처럼 같은 종류의 와인이라도 지역에서 지역에 따라 맛은 달라지죠.

예를 들어 같은 메를로 와인이라도 뉴질랜드 산이냐, 프랑스 산이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거죠. 와인은 하나의 품명으로 정의 내릴 수가 없어요.

제가 와인을 접하는 분들에게 해드릴 수 있는 말은 (많은) 시도를 해봐야 한다는 점이에요. 여러분 스스로의 성격과 캐릭터를 탐구하면서, 동시에 이와 어울리는, 여러분이 좋아할 만한 와인을 함께 찾아나가는 거죠.

포도의 품종이나, 와인의 브랜드나, 예쁜 병 디자인 같은 것이 아니라 분위기에 따라 와인을 선택해 보는 건 어떤가요? 가볍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원할 때면, 가벼운 와인이 끌리겠죠. 반대로 진지한 대화나, 비즈니스 관련 이야기가 오갈 때는 또 진지한 와인이 필요하겠죠.



안나   와인을 선택하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라고 봐요. 저희는 특정 종류의 와인을 좋아하냐고 묻기보단, 손님들이 선호하는 맛에 대해 물어봐요. 단맛을 즐기는지, 가벼운 것을 원하는지 등이요.

 

Your Character Define
What Kind of Wine you will gonna like.

 

피에르   결국 한 사람의 캐릭터가 그 사람이 좋아하게 될 와인을 정의 내린다고 말할 수 있어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도 서로의 캐릭터에 따라 좋은 사람이 있고, 싫은 사람이 있잖아요.

와인도 같아요. 하지만 만나보기 전엔 이를 알 수 없듯이 와인도 꾸준히 여러 종류를 접해봐야 자신에게 어울리는 와인을 찾을 수 있어요.

사람들이 기계처럼 와인을 고르는 것을 원치 않아요. (섬세하고 다양한 맛을 유지하기 위해) 작은 규모의 생산처에서만 와인을 공급받아요.

대량으로 와인을 공급하는 사람들보다, 소수의 와인을 취급하지만 그들만의 와인을 만드는 철학이 있고, 품질과 가격에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들이죠.

 

각자의 개성이 각자에게 어울리는 와인을 정한다는 말이 참 와닿네요. 가게에 대한 후기를 보면 사장님들이 친절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보이는데, 운영 철학을 들으니 더 이해가 갑니다. 손님들과 대화를 하고, 그들에게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해 주시니 자연스럽게 이런 후기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피에르   화려한 장소와 럭셔리 와인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도눔솔리스의 몫은 아니었어요. 정말 유명하고, 럭셔리한 와인을 취급하는 곳들은 이미 청담동, 이태원 등등에 아주 많잖아요.

친구, 동료와 함께 방문해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 그리고 그런 공간과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저희 가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안나   저희 바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곳이 너무 편안해서 집처럼 느껴진다고 말하곤 해요. 저희는 항상 손님들과 대화를 하거든요.

특히 외국인들은 (상대적으로) 더 개방적이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친구를 데려오고, 그 친구가 또 다른 친구를 데려오곤 해요(웃음). 그렇게 저희는 모든 문화권의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기 좋은 곳이 됐죠.

피에르   분위기가 좋을 때면 저희가 테이블마다 앉은 일행들을 서로 소개해 주기도 해요.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모든 테이블의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하고 있기도 하죠(웃음).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는 기분을 많이 잊어버렸잖아요. 여기에 와인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와인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활동을 잇는 거죠. 시간을 들이고,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서요.

 


이런 우연하지만 유쾌한 만남을 원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경험이다 보니 망설여지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특히 한국 손님들에게는 약간의 부담감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혹시 그런 예비 손님들께 조언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피에르   새로운 경험을 원하고 이미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도눔솔리스를 즐길 준비가 다 된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와인만 즐기시고 싶다면 당연히 그래도 됩니다. 저희가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강요하지는 않아요(웃음).

그렇지만, 우리가 여행을 갈 때는 새로운 환경과 사람을 받아들일 마음가짐으로 나서잖아요. 사실 그런 결심을 세우고 새로운 환경에 들어서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새로운 분위기를 느끼고 있다고 봐요.

또 친구와 함께 방문한다면 혼자서 오는 것보단 더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이기가 쉬울 거예요. 약간의 웜업 같은 거죠.

안나   한국의 문화도 많이 변하고 있잖아요. 저희처럼 젊고 어린… 아주 어리진 않습니다만(웃음)…아무튼 젊은 손님들은 먼저 대화도 하고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함께 즐기길 원하는 분들이 많아요. 외국인 손님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외국어를 배우기도 하고요

 물론 모든 세대의 한국 분들이 바뀌는 건 불가능하겠지만요. 하지만 저흰 아무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에 휴식을 원하시는 분들은 조용하고 편안하게 즐기시다 가시면 된답니다.

피에르   사실 너무 밀집된 느낌을 주지 않으려고 테이블끼리의 간격을 조정하는 편이에요. 테이블끼리 너무 가까이 붙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으면 갑갑하고 몰리는 느낌이 나잖아요.

그래서 적당한 거리를 두되 또 너무 떨어지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추구하는 편입니다.

 

이제 두 가지 질문만 남았네요. 라이브 공연이나, 갤러리 전시도 자주 하시는 듯해요. 아티스트를 섭외하거나 컨택하는 일은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피에르   사실 대부분은 바를 방문했던 저희의 친구들이 콘서트나 전시를 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편이에요. 저희는 따로 콘서트나 전시를 위해 사람들을 모으거나 하지는 않아요.

안나   지난번에는 피에르의 친구가 사진 전시를 한 적이 있는데요. 저희 바에 몇 번 방문한 후에 저희와 컬래버레이션을 제안했어요. 그 친구의 사진을 저희 바에 전시하는 동안, 가끔 그 친구가 바에 방문하면 사람들이 사진에 대해서 묻고 대화를 나누기도 했죠.

피에르   사실 바 안에 있는 것들 중 고정된 건 없어요. 지금은 사진들이 전시된 갤러리도 얼마든지 치우고 스크린을 내려 영화를 볼 수도 있고요. 테이블들도 모두 없애고 라이브 공연을 할 수도 있고요. 춤을 춰도 되고요(웃음).

저희 바의 분위기에 맞는 형태라면 어떤 것이든지 가능해요. 콘셉트와 무드만 어울린다면 언제든 좋은 아이디어와 예술가를 위해서라면 도눔솔리스의 문을 열 수 있답니다.


 

마지막으로 도눔솔리스가 어떤 공간이 되길 바라시나요? 손님들에게, 그리고 두 분 사장님께요.

피에르, 안나  편안하고 즐거운 곳이 됐으면 좋겠어요.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서 살아가기에, 사람들을 초대해서 즐겁게 즐기는 문화가 활발해지기 어렵잖아요. 공간이 작으면 불가능하니까요.

(그런 분들에게) 저희 도눔솔리스가 이런 만남과 즐거움의 장소가 됐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누군가와의 대화보다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살아가는 시간이 많잖아요. 낮 시간은 정말 혹독하고요. 회사 생활, 학교생활 스트레스를 많이 받잖아요. 그런 스트레스를 여기서 풀길 원해요.

여러 문화권의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며 즐거운 분위기를 즐기는 그런 장소로요. 와인은 어떤 술보다 대화에 어울리는 술이거든요. (웃음)


editor. 한나라  l  photographer. 김홍구



#홍릉가게들  #도눔솔리스  #와인바  #Friends

한나라 에디터의 다른 기사

'내 가게'를 선택한 이유, 홍릉의 청년 상인들 (링크)

- 여름, 색이 진해지는 계절 (링크)

홍릉 바이오 혁신클러스터의 사람, 장소, 모임,
그리고 이야기를 담는 로컬 웹진입니다.


Tel. 02-965-9694

Mail. hnzinekr@gmail.com

TEL. 02-965-9694  l  hn.ursc@gmail.com

서울시 동대문구 홍릉로 118 1층


Copyright  ©  2022. 홍릉 일대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All rights reserved.

TEL: 02-965-8943 ㅣ MAIL: hn.ursc@gmail.com

서울시 동대문구 홍릉로 118 3층


Copyright  ©  2022. 홍릉 일대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