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 『다시, 회기』 3부

By. 박수빈

- 네가 없어졌다. 꼭 증발한 것만 같다. 나는 운동을 하고 요리를 하며 네 빈자리를 나름대로 채워나간다. 그러나 이따금 찾아오는 어지럼증은 어쩌질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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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이후 너는 꼭 증발한 것 같았다. 휴대전화는 항상 꺼져있었고, 메신저엔 답장도 없었다. 읽지조차 않았다. 너의 소식을 안다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학교는 개강했는데 너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 기간이 길어지니 나는 무서워졌고 양가적인 감정이 들기도 했다. 너의 연락을 누구보다 간절히 기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연락이 온다면 안 좋을 소식일 것만 같아 차라리 연락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너의 집에 찾아가 볼 법도 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네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마음이 아플 것 같았다. 아픔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고 마주한다고 한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다.

  모든 인연이 대개 그렇듯 나의 일상은 너 없이도 꽤 잘 굴러갔다. 더 잘 굴러갔다고 표현해도 좋은 정도였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명상하고, 가글하고, 유산균 한 포를 입에 털어 넣은 후 무작정 나갔다. 처음에는 가볍게 산책을 했는데 어느 날엔가는 안개가 낀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져 이후엔 산에 다니기 시작했다. 가까운 곳에 천장산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늘이 숨겨놓은 산이라서 천장산이라고 부른다던데, 나는 하늘에 무언가를 숨겨놓고 싶은 사람들이 다녀서 천장산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늘에 장물이 있는 산, 천장산. 무언가를 얻기 위해 떠나기도 하지만 두고 오고 싶어서 발을 떼는 경우도 있지 않던가.

  나는 아주 잘 챙겨 먹었다. 때가 되면 기계적으로 밀어 넣었다고 표현한다면 정확할 것이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먹었다. 그러다 식사 준비를 할 때 내가 다른 생각을 안 한다는 걸 깨닫고는 조리 시간이 긴 음식만 골라서 해 먹기 시작했다. 한 번은 몇 시간에 걸쳐 돼지고기 김치찜과 부추무침, 두부조림과 가지전을 한꺼번에 한 적도 있었다. 족히 일주일은 먹을 반찬들이 나왔다. 그렇다고 그 일주일 동안 무언가를 만들어 먹지 않은 건 아니었다. 반찬이 충분해도 나는 끊임없이 무언갈 해 먹었다.

  몸은 나날이 건강해졌는데 이상하게 자주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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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다시 여름이 왔다. 나는 몰라보게 건강해졌다. 희고 가냘파서 여자아이 같았던 팔은 햇빛에 적당히 그을린 채 제법 굵어져 있었고, 자세도 곧아져서 키가 전보다 큰 것 같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었다. 

  나는 더위를 피해 이른 아침 혹은 해가 지기 직전의 저녁에만 산에 가곤 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늦잠을 잤고, 일어난 나는 명상하고, 가글하고, 유산균을 입에 털어놓은 후 한낮에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천장산에는 놀라우리만치 사람이 없었다. 10분쯤 오르고 나서 알았다. 이 시간대에 산을 오르지 않는 것은 생활 패턴의 문제라기보다 지혜의 문제다. 한여름 한낮의 산행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생각해보니 일기예보에서 폭염주의보라고 했던 것 같았다. 해는 내리쬈고, 땀은 비 오듯 쏟아졌다. 살은 따가웠고. 옷들은 폭 젖어갔다. 목이 말라왔다. 정상에 올라 고개를 들자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었다. 구름이 보고 싶었다. 이런 날에는 해를 가려주는 구름이 보고 싶다.

  산에서 내려와 숨을 고르고 있는데 띠링- 소리가 들렸다. 문자메시지다. 보낸 이는 너였다.

 

  “먼저 갈게. 고마웠어. 안녕.”


  그날이 왔다. 푸르기만 하던 하늘이 노래졌다.

 

7

  다리가 풀린 나는 산 입구에 주저앉아 휴대전화를 바라보았다. 무얼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네가 이 문자메시지를 보내기 전에 어떤 말들을 적었다 지웠는지는 알 것 같았다. 지리멸렬을 지독히도 싫어했던 너였기에 먼저 갈게-에서 시작해 고마웠어-를 거쳐 안녕-으로 끝나는 문자메시지는 필연이었다. 무슨 말을 적든 끝에 남는 말은 정해져 있었다.

  우리 중 누군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면 숨을 끊기 전에 상대에게 알리기로 한 약속을 기억하냐며 그 약속 때문에 메시지를 보낸다는 말을 썼다 지웠을 것이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미안하다는 말도 적었으나 고맙다는 말을 해치는 것 같아 썼다 지웠을 것이며, 잘 지내라는 말을 길게 풀어썼다가 지우고는 안녕이라는 말로 대신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너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달려야 했다.

  뛰었다. 달렸다. 질주했다. 전력으로 질주했다. 그러면서도 생각했다. 이 뜀박질은 결과를 바꿀 수 있는 뜀박질은 아니다. 아주 높은 확률로 이미 일은 벌어졌거나 혹은 아예 벌어지지 않았다. 내가 난입하여 결과를 바꿀 수 있는 경계에 네가 있을 확률은 희박하다. 그래도 뛰자. 이 뜀박질에 목적이 있다면 그건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에 있다. 달리자. 달리자. 달리자. 생각하는 에너지도 아깝다.

  회기사거리가 보였다. 신호등엔 붉은빛이 돌았던 것 같다.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아니, 멈추지 않기로 결심했다. 빠앙- 하는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뒤이어 고성의 남자 목소리가 귀를 찢으며 들어왔다.

 

“미쳤어! 죽고 싶어!”

 

  아니요, 아저씨. 저는 살리고 싶습니다.

  미치도록 살리고 싶습니다.

 

8

  너의 집 부근에 도착했을 무렵 생각이 돌아왔고, 빠르게 이어졌다.

  초인종을 누를까? 아니다. 문을 두드리자. 그편이 빠르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지? 10초를 기다렸는데 네가 나오지 않는다면? 늦게나마 경찰을 불러야 할까? 만일 내가 달리는 대신 먼저 경찰에 연락했고, 네가 경계에 있었고, 경찰이 경계에 있는 너를 삶으로 다시 끄집어올 수 있었다고 한다면, 나는 지금의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 못할 것이다. ↲

  그래. 바로 밑에 있다는 주인집 문을 두드리자. 세차게 두드리자. 옥탑방에 사는 제 친구가 위험합니다! 열쇠를 주세요! 제 친구를 구해야 합니다! 아무도 없다면? 있어도 열어주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발의 속도는 생각의 속도보다 빨랐다. 생각을 미처 매듭짓지도 못한 채 나는 너의 집 앞에 가닿았고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쾅! 쾅! …!

  채 세 번을 두드리기도 전에 철컥 소리가 들렸다. 안에서 문을 열 때 나는 소리다.

 

  아, 일은 이미 벌어졌거나, 혹은 아예 벌어지지 않았다.


writer. 박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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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빈

낮잠을 좋아한다. 눈을 떴을 때 햇빛이 방안 깊숙이 들어와 있는 순간을 좋아한다.

불쑥하는 연락을 좋아한다. 한 친구가 나오는 꿈을 꿨는데 일어나보니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와있는 순간을 좋아한다.

식상한 끝인사를 좋아한다. 안녕히 가세요-에서 안녕히-라는 말을 유독 좋아한다.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지 잊지만 않아도 인간은 꽤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

현재 홍릉 일대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의 '사회혁신커뮤니티' 공간을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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