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회기' + 시장 = ? (1부)

By. 오동건 에디터

- 사물을 모으거나,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고 나름의 체계를 만들어 자신과 주변의 삶을 정리하는 일에 흥미를 느낀다. 그 흥미의 초점을 회기, 홍릉에 맞춘다.



  2022년 8월 17일, 나와 홍릉의 첫 만남은 그야말로 ‘타임 어택(Time attack)’이었다. 새로운 고향이 된 서울에서 이어가고 싶은 게 익숙하지만 새로운 활동에 대한 기대감,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으로 나타난 황급함, 경력 단절을 극복할 절호의 기회를 허무하게 놓치고 싶지 않다는 절박감이 뒤섞여 만들어진 타임 어택의 결과는 ‘재기의 날갯짓’이었다.

  나의 새로운 연고지이자 재기의 땅이 된 홍릉 일대에서 내가 특별하게 초점을 맞추어 날갯짓을 펼칠 곳은 지역상권 활성화 사업의 주 대상지인 회기동이다. 내가 단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데도 너무나 익숙한 ‘회기’라는 지명에서 나는 수도권 전철 1호선의 회기역을 떠올렸다. 사실 ‘회기’라는 지명과 관련하여 내가 떠올리는 것은 회기역 하나 뿐이기도 하다.

  나는 아무 연고도 없는 서울에서 살기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2022년 10월 23일이 되면 서울살이 11개월을 맞이하는 나에게, 서울의 지명은 아주 오래전부터 낯설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중학교 2학년생이던 2004년 4월의 어느 날, ‘심파일’에서 재미있는 게임을 찾던 나는 정말 우연히 ‘BVE2’라는 게임을 보게 되었다. 기차와 지하철을 운전할 수 있는 철도 시뮬레이션이었다. 그때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것을 넘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이 희한한 게임과 우연히 만난 ‘사건’은 앞으로 펼쳐질 나의 삶과 지향점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내가 BVE를 만난 그 시기에는 인터넷이 빠르게 보급되고 네이버 카페가 보편화하며, 한마디로 BVE와 철도 동호인들의 전성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패치 제작자들은 수도권과 부산에 실제로 존재하는 온갖 전철 노선뿐만 아니라 가상 노선 패치까지 만들어 네이버 카페나 개인 사이트에서 배포하고 있었고, 그들과 그들이 남긴 패치는 한국 철도 시뮬레이션 역사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

  최초의 BVE2 한국 철도 노선 패치는 서울지하철 1호선이었는데, 서울역에서 성북역까지 구간이 구현되어 있었다. 동묘앞, 신설동, 제기동, 청량리, 그리고 회기. 모두 BVE 속 세상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실재하지만 아직 가 보지 못한 장소와 공간을 가상 공간에 구현된 콘텐츠를 통하여 미리 가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이 게임에 매료되었다. 세상 여러 지역의 역사, 문화와 이모저모에 호기심이 많은 나는 이 장소들에 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직접 찾아보며 제 나름대로 자신의 세계를 넓히고 있었다. ‘철도 덕후’들만 즐길 듯한 이 게임은 내가 모르던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소통의 매개체였다. 다만 그 시절의 나는,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난데없이 수도권에 취직하여 서울살이를 시작하고, 회기의 삶을 다루는 웹진 에디터가 되어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전철 1호선을 타고 회기에 가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알 수 없었다.



  다시 2022년 10월로 돌아온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회기에 관한 콘텐츠를 만드는 이번 편에는 회기역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 철도를 좋아하는 나는 역 하나만으로도 화수분 못지않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고 콘텐츠를 만들 자신이 있다. 하지만 아직 한 번도 가 보지 못했고 아무 연고도 없는 회기동을 이야기하려면 우선 지역에 관한 문헌과 자료를 찾아 면밀하게 사전 조사를 해야 할 것이다.



  먼저 서울역사편찬원 공식 누리집의 서울지명사전, 동대문구와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공식 누리집, 한국민족대백과사전에서 회기동의 유래와 관련 정보를 찾아보았다. 회기동이라는 지명은 조선 9대 임금 성종의 폐비이자 10대 임금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의 묘소로, 1482년에 조성된 회묘(懷墓)가 있던 데서 유래되었다.

  회기동 산 5번지의 경희의료원 자리에 있었다가 1969년 10월 25일에 경기도 고양시 원당읍 원당리 서삼릉 경내로 옮겨진 회묘는 연산군 10년인 1504년에 회릉(懷陵)으로 격이 높아졌고, 마을은 회릉동(懷陵洞)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1506년에 중종반정이 일어나 연산군이 쫓겨난 다음, ‘회릉’은 ‘회묘’로 격하되고 ‘회릉동’은 ‘회묘동(懷墓洞)’으로 이름이 바뀌었었다.

  이윽고 ‘품을 회(懷)’자는 음이 같은 ‘돌아올 회(回)’로 바뀌어 마을 이름은 ‘회묘리(回墓里)’로 되었다가, 회기리(回墓里)로 바뀌었다. 이 마을은 조선 시대에 한성부(漢城府) 동부(東部) 인창방(仁昌坊)에 속하였다가, 1894년 갑오개혁 때 한성부 동서(東署) 인창방 동소문외계(東小門外契) 회기리가 되었다.

  일제 강점기인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따라 경성부 인창면 회기동 병점리가 되었다가 1914년 4월 1일 경성부 구역이 획정되며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에 소속되고 회기동 부근 병점리와 합쳐 회기리가 되었다.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에 따라 경성부 회기정(回墓町)으로 개편되고, 1943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에 따라 동대문구에 편입되었다. 해방 이후 미군정 시기인 1946년 10월 1일 일본식 동명인 회기정이 우리 동명인 회기동(回墓洞)으로 정정되어 오늘에 이른다.

  동대문구청 누리집이 제공하는 현황에 따르면, 지역 특성은 일반 상가 지역과 중산층 거주 지역이 혼재하는 생활 안정 지역으로 경희대학교와 경희의료원 등 다중 이용 시설이 있어 1일 유동 인구가 많으며, 교육 기관 밀집으로 20~30대 젊은 층이 전체 인구의 45%를 차지한다. 면적은 0.8㎢로 동대문구 전체의 약 5.42%에 이르며, 인구는 6,825세대 10,675명이다.

  이어서 지리를 이해하기 위하여 카카오맵과 네이버 지도로 회기동을 살펴보았다. 내 눈에 처음 비친 회기동 지도는 구석기 시대 유물인 주먹도끼를 닮았다.


공공누리 홈페이지 시대별 유물 카테고리에서 찾은 주먹도끼 이미지

https://www.kogl.or.kr/recommend/recommendDivView.do?atcUrl=keyword&recommendIdx=256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가 동네 영역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가 회기동에 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먼저 회기역을 찾아보자. 노포역은 노포동에, 망미역은 망미동에, 초량역은 초량동에 있으니 회기역도 회기동에 있겠지. 예외는 있다. 이를테면 수영역은 수영동이 아니라 광안동에 있다. 하지만 광안동은 수영구의 일부분인 데다가 어차피 이 지역 일대를 수영구가 생기기 전부터 수영이라고 불렀으니 수영역은 수영에 있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회기역의 주소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역이 회기동이 아니라 휘경동에 있다. 회기동의 회기역앞 교차로까지 거리는 불과 163m, 걸어서 3분 거리. 회기역을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풀어보겠다는 꿈은 이 짧은 간격 때문에 사라졌다.

  하지만 괜찮다. 대안을 찾으면 된다. 이번에는 지도를 확대하여 동네를 대표하는 자연 지물이나 유적지가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동네 영역의 절반을 차지하는 경희대학교 캠퍼스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식당, 카페, 약국, 가게, 주택으로 가득하다.

  혹시 지도에 나타나지 않은 역사문화유산이 있을까?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누리집에 들어가 통합검색에서 ‘회기동’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였다. 문화재정보에서 결과 8건이 나왔는데, 시도유형문화재로 ‘연화사 목각석가여래설법상’, ‘연화사 칠성도’, ‘연화사 아미타불괘불도’, ‘연화사 신중도’, ‘연화사 지장시왕도’, ‘연화사 천수관음도’, ‘연화사 산신도’가 있고, 국가등록문화재로 ‘서울 경희대학교 본관’이 있다. 연화사라는 절에 불교 미술품이 많이 소장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카카오맵과 네이버 지도로 돌아가 ‘연화사’를 검색해 보았는데, 경희대학교 병원, 경희초등학교, 경희여자중학교와 경희여자고등학교 사이에 숨어 있다. 그런데 불화를 사진 찍으려면 미리 사찰 측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할 텐데, 만약 허가가 나지 않는다면 글을 쓰기 어려워진다. 그럼 경희대학교 캠퍼스 탐방은 어떨까? 하지만 내가 다니지도 않은 학교에 관하여 논하기는 쉽지 않고 조심스럽다.

  순간 한숨이 나오며 잠깐 막막함을 느꼈다. 절반이 학교 캠퍼스고 나머지 절반은 상가와 주거지인 동네에서 도대체 역사와 문화를 어떻게 찾아 소개할 수 있을까?

  가만, 학교가 크니 분명 주변에 상권이 있을 것이고 주택가도 있으니까 혹시 가까운 곳에 시장이 있지 않을까? 지도를 확대하여 회기역과 가장 가까운 회기동의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니, 회기동 주민센터 옆에 ‘회기시장’이 있다.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시장은 지역의 생활 문화를 살펴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나와 회기동의 첫 만남을 이곳에서 이루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2년 10월 11일 화요일 오후 3시 56분. 나는 갑작스럽게 일이 있어 노원구 공릉동에 있었다. 이날 회기에 갈 계획은 없었다. 그날 저녁 7시 30분에는 종로5가역 근처에 있는 영국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의 특강 참석이 예정되어 있었다.

  영국 왕립아시아학회는 동양학을 연구하는 세계적인 학술 단체로 1823년에 설립되었으며, 이듬해에 조지 4세 국왕의 추인을 받아 ‘왕립’ 지위를 얻게 되었다. 한국 왕립아시아학회라고도 불리는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한국학 기관으로 호머 헐버트, 호러스 언더우드, 헨리 아펜젤러, 제임스 게일, 호러스 알런, 윌리엄 스크랜튼 등 한국 근현대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외국인들이 한국을 탐구하고 세계에 소개하기 위하여 1900년 6월 16일에 서울에서 설립하였다.

  나는 영국 출신인 학회 명예회장님과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고 지내다가, 2022년 3월부터 학회 회원으로 가입하여 답사와 특강과 같은 여러 행사에 참여하고 회원들과 교류하고 있다. 물품을 받고 나면 특강 시작까지 3시간 30분 정도 여유 시간이 남는다. 이 시간을 활용하여 회기시장을 둘러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기시장까지 경로를 찾아보니, 센터 앞 도로 건너편에 있는 ‘공릉행복발전소’ 정류장에서 1135번 버스를 타고 ‘석계역2번 출구’ 정류장에 내려, 석계역에서 전철 1호선으로 갈아타 회기역에 내려서 8분쯤 걸어가면 된다. 걸리는 시간은 약 25분. 회기역에서 종로5가역까지는 전철 타고 18분 정도 간다. 저녁을 밖에서 사 먹어야 하니까, 회기를 둘러볼 시간은 2시간 정도다.

  두 번째 만남에서도 ‘타임 어택’을 피할 수가 없겠다. 이번에는 ‘공릉에서 회기까지 타임 어택’이다.



  16시 10분, ‘공릉행복발전소’ 정류장에 도착한 1135번 버스에 올라 공릉을 떠나 홍릉으로 타임 어택을 시작했다. 태릉입구역 사거리에서 우회전한 버스는 중랑천을 가로지르는 월릉교를 건너 석계역 쪽으로 달렸다.

  “이번 정류장은 석계역2번출구입니다.”

  16시 15분, 안내 방송이 나오며 버스가 정류장에 멈췄다. 나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석계역 2번 출입구로 뛰어갔다.



  미로 찾기를 하듯 통로를 지나 1호선 타는 곳으로 올라가니 16시 21분. 차량의 전두부가 뱀의 머리처럼 생겨서 철도 동호인들이 이른바 ‘뱀눈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한국철도공사 VVVF(Variable Voltage Variable Frequency, ‘가변 전압 가변 주파수 제어’) 3세대 전동차가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첫 번째 객차의 첫 번째 문으로 뛰어들었다. 승객들로 북적거리는 객실에는 빈자리가 없어서 나는 왼쪽 문 앞에 섰다.

 


  16시 27분, 기다리던 안내 방송이 나왔다.

  “이번 역은 회기, 회기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경의-중앙선으로 가실 고객께서는 열차를 갈아타시기 바랍니다. 춘천 방면으로 가실 고객께서도 이번 역에 내리셔서 상봉역까지 가신 후 경춘선 열차로 갈아타시기 바랍니다.”

  그 와중에, 어느 할머니가 여자아이에게 “너 어디까지 가는 거야?” 라고 묻고, 엄마가 “어디까지 가요?” 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아빠 만나러” 라고 대답했다.

  16시 28분, 회기역 도착. 나는 아이가 어느 역에 내려 어디서 아빠를 만날지는 알 수 없지만, 목적지와 기다림이 머지않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며 전동차에서 내렸다.



  나의 눈에 비친 회기역의 첫 풍경은 ITX-청춘 열차가 지나가는 모습이었다. 뒤이어 16시 29분, 나를 처음으로 회기에 데려다준 ‘뱀눈이’ 전동차는 많은 사람과 그들의 삶이 향하는 목적지를 향하여 회기를 떠났다.



  타는 곳을 잠시 둘러본 다음 맞이방으로 올라갔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다. 맞이방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16시 30분, 광운대역으로 가는 1호선 열차가 도착한다는 안내가 나오자 사람들이 타는 곳으로 뛰어가기 시작한다.



  16시 33분, 1번 출입구를 타고 역사 밖으로 내려갔다. 1분 뒤, 출입구 앞 정류장에 도착한 동대문 1번 마을버스에서 승객들이 말 그대로 '쏟아져' 내린다. 1번 출입구에는 역에서 나가는 사람들과 역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몰려 콩나물시루가 따로 없었다.




  나는 정신 없이 역을 빠져나와 출입구 앞에 있는 건널목을 건넌 다음, 회기시장을 찾아 왼쪽으로 걸어갔다. 부산의 서면 뒷골목이나 부산대앞을 닮은 길을 따라가자, 회기로와 이문로가 만나는 회기역앞 교차로가 나타났다.

  16시 39분,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회기동 땅을 밟았다. 좁은 길에 차와 사람이 몰려 터져나가는 이곳이 바로 내가 앞으로 에디터로 활동하며 콘텐츠를 만들 곳이다.

  이문로를 가로지르는 건널목을 건너 회기역베라체캠퍼스아파트 앞에 이르렀다. 16시 40분, 김홍구 코디네이터에게 나의 회기에 대한 첫인상을 전했다.

  “여기 변두리인 줄 알았는데 사람들 터져나가네요”

  1분 뒤에 바로 답장이 왔다.

  “그쪽이 제법 많은 편이죠ㅋㅋㅋ”



  이제 회기시장을 찾을 시간. 카카오맵을 보며 시장 쪽으로 걸어갔다. 스타벅스 회기역 사거리점에서 왼쪽으로 난, 약간 오르막이 있는 길을 따라가자, 핫도그 그라피티가 그려진 오래된 건물과 학교 담벼락이 나타났다.

  그런데...

  시장이 보이지 않는다.


  (2부에 계속)


editor. 오동건



#홍릉일대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에디터스 #회기시장 #또_타임어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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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홍릉의 첫 만남은 '타임 어택(time attack)'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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